[글]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게임을 지배한다
<게임 크리에이터가 알아야 할 97가지 : 크리에이티브한 게임 만들기>
200-201쪽.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게임을 지배한다 / 김희정
혼자 만드는 게임이 아니고서야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든 의사소통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게임 크리에이터, 그 중에서도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기획서로 구체화되어야 하며, 기획서는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전달되어 현실로 나타나야 한다. 간단하게 풀어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나게 해줄 사람에게 내 아이디어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방도가 없으면 게임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뜻하는 바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는지 힘겨워 하거나, 저 사람과 나는 의견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며 같이 일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은 생각 차이가 아니라 언어 차이에서 온다. 대화하는 다수의 사람이 모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으며 그 목적이 '협의'에 있는 데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언어 생활을 점검해 봐야 할 때이다.
다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라
회의 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내 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여본 적은 없는가? 사람들은 똑같은 단어도 절대 같은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많은 수의' 라는 말을 10개가 넘는 수에 대해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 개가 넘을 때 사용한다. '고려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을 정말로 고려할 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돌려 말하는 거절의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바란다면 상대방이 지금 말하고 있는 단어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의 단어인지 확인하고, 이해해야 한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게 유도하라
상대방이 나와 다른 말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동일한 언어 규약을 정하는 것으로 한다. "그 부분에는 컷신을 넣어야 되겠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컷신이 의미하는 바가 미리 고성능 고비용으로 프리렌더링한 동영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실시간 렌더일 무비인지, 인 게임 캐릭터와 배경을 사용하는 간단한 이벤트인지, 그 자리에서 이해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말을 누가 쓰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규약을 정해서 다른 사람들 역시 그 단어를 쓰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서마다, 혹은 전달 문서, 메일마다 서로 다른 단어로 동일한 것을 지칭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오해를 일으키는 지름길이 된다.
남을 이해시키기 위한 언어를 사용하라
기획서를 쓸 때에도, 말로 다른 사람에게 내용을 전달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행동이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점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항상 의도가 동반이 되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기 위해 이것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올바른 형태이다.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걸 해달라, 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협업을 하는 동료의 동의를 얻기 힘들며 '아 해달라면 해줄 것이지'라는 태도는 서로 간에 최악의 상황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초등학생이 읽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쉬운 말로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것, 소위 말하는 육하원칙을 지킨 문장으로 기획서, 전달사항, 메일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물론 평소 하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알고, 사용하라
게임을 만들어서 선보여야 할 궁극의 대상이 유저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기획자가 이해시켜야 할 대상은 같은 팀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게임의 구조, 내용, 보상, 인터페이스 등 모든 부분은 유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몬스터에 강력한 보상을 배치하는 것은, '이 몬스터를 잡으라'라고 유저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을 통해 내가 어떤 말을 유저에게 하고 있는 것인지 만드는 사람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그 결과도 반응도 예측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게임이 탄생하고 만다. 흔히 말하는 '기획 의도대로 흐르지 않았다'라는 현상이 그것이다. 유저가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나의 의도, 즉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것이 과연 '받아들임직'한 물건인가는 둘째 문제이다. 같은 팀은 서로 말을 듣고 협의할 의시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유저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유저를 꼬시기 위해서는 언어의 마술사처럼, 어떻게 애햐 유저가 나의 말을 듣게 만들 것인가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 또, 사람을 공부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통해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으니까.
<김희정>
'마비노기', '프리우스', '패 온라인' 등 주로 MMORPG의 시나리오를 담당. 소설가이자 TREPG 마스터로서도 활동했으며 현재는 시간 부족으로 ORPG만 하고 있음. 우리나라에서는 소수 직종인 전문 시나리오 라이터. 현재는 블루사이드에서 'KUF2'의 세상을 만들고 있음. 두 아이의 엄마로, 딸내미와 함께할 수 있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게 꿈.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여성' 기획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 관심 있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시나리오 라이터라는 소수 직종이면서도 게임 기획자로서 폭넓은 식견과, 직군을 가리지 않고 적용해 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지적해줘서 전문 인용했음
찾아보니 마비노기 G1-G3 시나리오 라이터셨네... ㅎ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