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2 2018. 6. 14. 22:28


신 - 인간, 세계와 운명 사이의 아이러니


-우리가 너무 신나하다가, 벌이라도 받은 게 아닐까
- 이건 알아둬요 류노스케. 신은 인간을 벌하지 않아요!
  그저 즐기며 희롱할 뿐이죠!

- 형씨..?
- 난 할 수 있는 최악의 악행과 신성 모독을 자행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몸을 해하는 어떤 신벌도 없었어요!
  내 악의 탐구는 8년이나 방임되고 간과되었었죠
  결국 나를 멸한 건 신벌이 아니라
  같은 인간들의 욕심이었습니다
  교회와 국왕이 단죄랍시고 나를 교수대에 매단 것은
  내 수중의 부와 영토를 찬탈하기 위해서였죠
  내 악행을 저지한 건 신벌과는 동떨어진
  단순한 약탈이었다고요!

- 저기 형씨.. 그래도 신은 있잖아.
- 당신은 기적도 믿지 않고 신앙도 없지 않았던가요?
- 이 세상은 따분하게 보이지만, 찾을 수록 재미있고 괴상한 일이 많잖아!
  옛날부터 생각했어
  우연히 만들어진 세상치곤 유쾌한 일이 너무 많다고
  제대로 즐기기만 한다면
 이 세상보다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는 없어!
  누군가 등장인물 50억명 짜리 대하소설을 쓰고 있는 거야
  그 작자를 가리키는 말이
  신 말고 뭐가 있겠어?
- 하면 여쭙겠습니다, 류노스케. 그 신은 인간을 사랑할까요?
- 물론이지. 이 세상의 시나리오를 쉴 새 없이 써 내려가는 게
  애정 없이 가능하겠어?
 본인도 막 신이 나서 써 내려가고 있을 걸?
 자기 작품을 즐기면서
 신은 용기나 희망 같은 인간 찬가를 좋아하고
 그 못지 않게 피바람이나 비명이나 절망도 좋아해
 그게 아니면 산 내장이 저렇게 고운 색을 띨까?
 세상은 신의 사랑으로 가득한 게 틀림 없어!

- 백성들도 신앙을 버리고
  위정자도 신의 뜻을 외면하는 이런 시대에
  이런 파릇파릇한 신앙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니!
  탄복했습니다, 류느스케. 위대한 제 마스터시여.
- 쑥스럽잖아
- 한데 당신의 종교관에 따르면 제 신성 모독도 쇼일 뿐인가요
- 아니지, 망가지는 배역이라면 철저히 망가지고 웃겨주는 게 일류 엔터테이너 아니겠어
  형씨의 예리한 비난에는 신도 기뻐하면서 장단 맞춰 줄걸?
- 신성 모독도, 예찬도! 당신에게는 모두가 숭배라는 것입니까!
  류노스케, 당신의 철학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군요!
  만인을 인형 삼아 희롱하는 절대자가!
  자기 또한 배우라니!
  그렇군요, 이제 그 악랄한 취향도 이해가 가네요
  좋아요
 하면 더욱 세련된 절망과 통곡으로 신의 정원을 물들여 줍시다
 오락의 진수를 아는 자가 신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천상의 연출가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 페이트 시즌1 13화 中


>>(재창작)

   기적 같은 일로 희망/구원을 찾게 된 세계

   혹자는 신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나를 구한 것은 신의 축복이 아니라, 인간들의 피 어린 희생이었음